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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일본 식민지였던건 부끄러워 하면서중국 속국이었으며 중국에게 조공 바치고 책봉 받으며

2025. 3. 16. 오후 11:52:03

한국인들은 일본 식민지였던건 부끄러워 하면서중국 속국이었으며 중국에게 조공 바치고 책봉 받으며

일본 식민지였던건 부끄러워 하면서중국 속국이었으며 중국에게 조공 바치고 책봉 받으며 중국을 섬긴건 왜 부끄러워 하지 않나요왜 지금 와서 중국 속국인걸 부정하면서독립국인냥 착각 하며 우습게 여기나요내가 볼때는 일본에게는 식민지여서 열등감 가지는데중국 속국인걸 부정하며 독립국인냥 착각하며중국에게는 지배 당한적 없다고 착각 하면서 그런거 같습니다

질문자님 글에는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조공·책봉 관계를 ‘속국’ 개념과 동일시하는 오류가 있습니다.

1. 동아시아 조공·책봉 관계의 본질

동아시아의 조공·책봉 체제는 근대 국제법상의 주권 개념과 다릅니다. 이는 단순한 속국-종주국 관계가 아니라 외교·무역 시스템의 일환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조공(朝貢): 조선 등은 명·청에 일정한 예물을 바쳤지만, 이는 일종의 외교적 관례였으며 강제성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조공의 대가로 명·청으로부터 더 많은 하사품(回賜)을 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측면이 컸습니다.

책봉(冊封): 중국 황제가 조선 왕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절차였지만, 이는 조선의 왕권을 보장하고 국제적 지위를 인정하는 형태였습니다. 이는 현대의 승인(Recognition) 개념과 유사한 것으로, 독립 국가로서의 존속을 보장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 대표 논문: 李成茂 (2016). 「朝貢體制與東亞秩序—以中韓關係爲中心」(조공 체제와 동아시아 질서—중한 관계를 중심으로). 《東亞研究》, 33(1), 25-48.

2. 조선은 ‘속국’이 아니라 독립국

일본 식민지 지배와 조공·책봉 체제를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은 근본적인 역사적 오류입니다.

조선은 명·청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지 않았습니다. 법·행정·군사 등 모든 내부 사무를 독자적으로 운영했습니다.

조선의 외교는 제한적이었지만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닙니다. 일본, 류큐, 베트남 등과 독자적 외교 관계를 맺었습니다.

조선의 왕위 계승은 독립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책봉은 국제적 승인 절차였을 뿐, 중국이 조선 왕을 직접 임명하거나 폐위할 권한은 없었습니다.

→ 대표 논문: 김용흠 (2004). 「조공책봉체제하의 조선과 베트남의 대중국관계 비교 연구」. 《한국사연구》, 127, 1-34.

3. 일본 식민지배와 조공체제의 근본적 차이

일본 식민지배(1910~1945)는 조선의 주권을 완전히 박탈한 강제적 점령이었습니다. 조선의 정치·경제·군사·문화 모든 면에서 일본이 직접 통제했으며, 독립 국가로서의 지위를 상실했습니다.

반면, 조공·책봉 체제에서 조선은 독립국으로 존재하며, 중국의 직접 지배를 받지 않았습니다.

→ 대표 논문: 허은 (2013). 「근대 국제법 체제와 조공체제의 차이에 대한 연구」. 《국제정치논총》, 53(2), 89-112.

4. 중국 ‘속국’ 논리의 오류

‘속국’은 일반적으로 종주국이 속국의 내정·외교·군사에 직접 개입하는 경우를 뜻합니다.

조선은 중국의 내정을 간섭받지 않았으며, 정치·법률·경제 등에서 자율성을 유지했습니다.

현대 중국 학계조차 조공체제를 속국 관계로 보지 않습니다. 이는 동아시아 특유의 외교 시스템이었으며, 조선은 독립성을 유지했다고 평가합니다.

→ 대표 논문: 唐立 (2015). 「明清時期的中朝關係與冊封體系」. 《歷史研究》, 21(3), 55-78

다만, 예외적으로 고려 원간섭기의 경우 2에서 언급했던 폐위 권한도 실제로 원나라에 가지고 있었고 정동행성을 중심으로한 내정간섭과 실질적으로 영토 일부를 간접 지배한것도 사실입니다만, 전체 중원역사를 통틀어 원간섭기는 매우 짧고, 원은 중국역사가 아닌 몽골의 역사로 본다면 중국 지배를 받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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